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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정책은 사업이 아닌 운동으로 접근해야

[전북더푸른뉴스 정기원 컬럼] 

요즘 독서정책을 이야기할 때 ‘프로젝트(project)’라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일정 기간을 정해 예산을 투입하고, 참여 인원을 집계해 성과를 보고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들이 독서 환경을 넓히는 데 기여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독서를 이 틀 안에만 가두는 순간, 우리는 독서가 가진 본래의 힘을 놓치게 된다. 독서정책은 프로젝트가 아니다. 독서는 삶을 따라 흐르며 사람과 공동체를 바꾸는 하나의 무브먼트(movement)다.

 

프로젝트에는 시작과 종료가 있다. 그러나 독서에는 끝이 없다. 어린 시절 읽은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세계관이 되고, 청소년기에 만난 문장은 진로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노년에 다시 펼친 책은 지나온 삶을 해석하게 하고, 남은 시간을 성찰하게 만든다. 이처럼 독서는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관통한다. 그런 독서를 1년 짜리 사업으로만 다루는 것은 처음부터 한계를 안고 출발하는 일이다.

 

이 지점에서 작은도서관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작은도서관은 거대한 시설도, 화려한 공간도 아니다. 그러나 생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책을 만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아파트 단지 한켠, 마을 골목 안, 교회와 복지관 옆에 자리한 작은도서관은 ‘일부러 찾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머무는 공간’이다. 이 일상의 접근성은 독서를 운동으로 확장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토대다.

 

작은도서관이 제 역할을 할 때, 그곳은 단순한 대출 공간을 넘어 관계가 회복되는 장소가 된다. 아이들은 책을 통해 상상력을 키우고, 어른들은 책을 통해 대화를 회복하며, 이웃은 책을 매개로 서로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통계 수치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공동체의 분위기와 결은 분명히 달라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독서를 자주 ‘행사’로 소비해왔다. 독서의 달, 독서주간, 각종 챌린지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독서도 함께 끝나버린다면, 그것은 운동이 아니라 이벤트에 가깝다. 운동은 조용하지만 오래간다. 눈에 띄는 성과보다 일상의 변화를 목표로 하며, 습관과 문화로 자리 잡는다.

 

독서운동의 중심에는 책이 아니라 사람이 있다. 몇 권을 읽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깊이 생각하게 되었는가이다. 독서운동은 참여 인원을 늘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읽고 생각하고 나누는 시민을 길러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작은도서관이 사람을 키우는 공간이 될 때, 독서는 정책이 아니라 문화가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속도에 익숙하다. 짧은 문장과 빠른 영상, 즉각적인 반응이 일상이 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천천히 읽고 깊이 생각하는 힘은 더욱 절실하다. 독서는 시대에 뒤처진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시대를 견디게 하는 힘이다.

 

독서정책은 프로젝트 아니다. 사람을 바꾸고, 공동체를 바꾸며, 사회의 미래를 바꾸는 지속적인 흐름이다. 작은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이 조용한 독서운동이 일회성 사업이 아니라 생활 속 무브먼트로 뿌리내릴 때, 우리 사회는 조금 더 깊어지고 단단해질 것이다. 그 변화는 언제나 그렇듯,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된다.

 

정기원 박사/ 본지 고문 (사)한국작은도서관협회 이사장